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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얘기 들으러 오지 마세요

물리 참 물린다

자 my dad is a physicist and my brother is an engineering student. What do you expect. 

 

어릴때부터 존경하는 아바마마께서는 소인에게 물리를 공부할 것을 적극 권고하셨으나 소인의 부족한 두뇌로는 중력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조차 너무 어려웠다. I shit you not I cried when I was studying for the 통합과학 test because everything else was okay except for physics. But the not-so-okayness of physics overpowered the okayness of everything else. 1학년때 통과땜에 멘탈이 탈타리탈탈쓰 탈곡된 겨울씨는 방에서 울고, 그 와중에 강지연씨는 나한테 괜찮아 천천히 하면 되긴 되더라라며 위로를 해 주시고, 유다연씨는 바다소 문제 정리한 파일을 주시고, 백지호씨는 설명을 해주고, 또 다른 백지호씨도 설명을 해 주시고, 여하튼 주변에 있는 나보다 물리 잘 하는 인간이라면 전부 붙잡고서 울면서 도와달라고 징징거린 결과 그래도 통과 시험에서 물리 50점 중 42점인가를 받았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주자면 난 고1이 되어서야 “힘을 안 받은 물체도 움직일 수 있다”라는 개념을 이해했다. 눈으로 보이는 세상만 이해하고 있던 겨울씨는 JDS가 강조하시는 상상력이 없어서 힘을 받지 않은 물체가 등속운동한다는 개념을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힘을 안 받으면 걍 스르륵 멈추는거지 뭔 운동을 하고 jiral이여라고 믿었다. 이런 두뇌로 중학교 과학은 어떻게 배웠을까. 

 

고1 겨울씨는 물리를 조지게 못했다. 나와 수업반이었던 사람들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빡형은 1학기 내내 나에게 별을 하나 주셨다. 그거 어케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쌤의 측은지심이 폭발하시어 겨우 하나 주신 것 같다. 난 그냥 아무것도 이해를 못 한 채 수업을 들었고, “아무것도 이해를 못 한다”의 범위에 들어있는, 내가 모르는 모든 정보들 중 도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될지 쌤도 몰랐기 때문에 이 무지함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쌤이 탈출속도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치자. 그러면 나는 탈출속도가 뭐예요?라고 질문을 한다. 그럼 쌤은 지구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빨리 가야 하는지를 나타내는거야라고 답을 하신다. 그럼 나는 지구 중력을 어떻게 알아요? —> 이렇게저렇게 계산한단다 —> 왜 식이 그렇게 돼요? —>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식이 나온단다 —> 왜요?? —> 도대체 어디까지 모르는거니? —> 왜 힘이 ma인거에요? 힘이 뭐예요? 중력은요? 수직항력이 뭐예요? —> 그러게. 물론 실제 대화는 저기서 두번째 질문 정도에서 끊겼다. 내가 너무 어리둥절해서 더 이상 질문할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뭔가 아리송하게 대충 추상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니 그냥 이 정도면 이해한거겠지~라고 착각한 채 교실을 나가는 것이다. 

 

자 여기서 물알못을 위한 얘기를 하나 해주겠다. 나는 그동안 물리 하는 가족을 두고 살다보니 물리에 나오는 모든 개념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살았다. 중학교때까지 내가 받은 물리 교육은 거의 전래동화를 읽는 느낌의 교육이었다. kinetic energy를 1/2(mv^2)로 표현하는 것은 수학적인 계산을 통해 나오는 것인데, 내가 배운 건 ‘운동에너지는 무거우면 대충 클 것 같고 빠르면 클 것 같고 그러지 않니? 그런데 사람들이 열심히 계산을 해봤더니 저런 식이 나왔대~’ 정도였다. 운동에 대해 설명한다 치면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생각을 해봤더니 세상에 만류인력이란 게 있었대~’ 이렇게만 배운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물리를 알고 있다는 근자감은 있고, 막상 이해한 개념이나 식은 하나도 없었던거다. 어릴때야 주변에서 엄빠가 일하고 있으면 ‘저거 뭐야~?’ 이렇게 질문을 하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어쨌든 그러다 보니 내 지식은 (비단 물리 뿐은 아니다. 한국사도 할아버지한테 놀아달라고 징징거리면서 뭔가 열심히 듣고 접하긴 했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대충 들어본 것 같은데 하나도 모르겠다- 수준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을 위한 양자역학’이라는 책을 쓰면 부계친 그 누구보다 재미있고 이해 잘 되게 쓸 자신은 있지만 (마이 파더께서는 초딩 겨울씨한테 영의 이중슬릿 실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슈뢰딩거의 고양이, 스커미온과 그래핀과 초전도체에 대한 이야기를 이솝우화 수준으로 바꿔 들려줬다), 막상 물리에 대해 뭘 아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본론으로 돌아와 겨울씨는 물리를 못했다. 1학년 2학기 초의 어느 화창한 날, 빡형을 다산충무 사잇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빡형께서 나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아 내가 23기 통합과학 해서 만난 애들 중에서 이름을 기억하는 애들이 몇명 안 되는데, 그중에 몇명은 너무 잘해서 기억하고, 우리 한지우는 너무 못해서 기억해.” 본인도 좀 미안하셨는지 말끝을 흐리셨다. 허허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을 와장창해버리시다니. 하지만 나도 반박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겁나게 웃고 말았다. 

 

그런 겨울씨도 고등학교 2년 내내 주변에 물리 하는 사람들을 두고 살다보니 물리가 멋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또 빡형사건도 그렇고 아무래도 주변 애들은 물리를 다 잘 하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소외감이 상당히 크게 들었다. (물리 하는 여러분아 내가 여러분과 웃고 떠드는 동안에도 속으로 겁나 슬펐던 적이 꽤 있다…) 그 와중에 ‘그래도 난 물리는 좀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에 들은 샛바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고, 점점 옆에서 물리 드립 치는걸 들으며 나도 저 이과스러운 대화에 끼고 싶다는 오기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또 진짜 진심으로 물리가 멋있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물리라는 것이 멋있는 이유는 뭐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설명을 해보자면,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다른 과학의 경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다룬다. 생물은 니가 생물이고, 화학은 물에다가 소금 타고서 쉐낏쉐낏해주면 화학스러운 거 할 수 있고, 지학은 나가서 땅 파면 지학이다. 이러한 과학들의 경우 탐구대상 =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물리는 그렇지 않다. for example 힘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힘을 줘서 물건을 움직이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고, 이런 것들은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물리에서 연구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는) 사과가 아니라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사실 화학반응이 일어날때 우리가 그것을 분자나 원자 단위로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토콘드리아를 손으로 들고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래도 뭔 느낌인지 알잖아. 결론적으로 물리는 정말 추상적이고, 그만큼 미천한 인간들이 한번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또 추상적이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과 상상력을 활용해 생각하면 가장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물리의 표면만 핥은 문과가 이런 소리 지껄이는게 불편한 이과여러분도 있을테지만 그냥 닥치고 들어라 나는 저렇게 느꼈다. 그리고 니들이 살다가 물리에 대해 이렇게 낭만적으로 말하는 사람 볼 기회 얼마 없을테니 지금을 즐기란 말이다 캬악.) 

 

어쨌든 그래서 겨울씨는 AP Physics 1 시험을 신청했다. 

 

그래. 앱피 시험을 보겠다고 다짐한 2학년 2학기 초부터 겨울씨는 무언가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겨울방학이 있었고 지엘이 있었고 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씨는 지엘을 하면서 거의 매일 밤 탈출해서 실험실에 가고, 낮에 공강 생기면 실험실에 가고, 새벽에 실험실 가서 공부하고 이러면서 앱피1 범위를 한 번 다 배웠다! kid friendly explanation 및 시험 잘 보는 방법에 통달한 태웅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근데 너는 여전히 뭐였드라 여하튼 뭐 증명을 안 해줬어. 그래도 이 인간은 나를 유딩 취급하면서 가르치는 건 잘해서 뭔가 초딩겨울씨가 아빠에게 배운 이솝우화 느낌의 물리와 제대로 된 수학의 언어로 서술한 물리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설명을 해줬다. 쓰고 보니 기분이 처참하지만 어쨌든 배우긴 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 된거다. 그리고 지엘이 끝난 후 혜움의 기생충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미안해… 내가 좀 비굴하고 처절하고 한심해… 

 

이참에 혜움을 보고 감탄한 얘기를 해주겠다. 나는 기생충 생활을 하며 애들이 실험을 하는 걸 전부 옆에서 봤다. 물론 하나도 이해하진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실험실을 백수처럼 어슬렁거리던 내가 거슬렸던지 말루가 노트북으로 본인이 녹음한 걸 어째저째 해서 분석하는 걸 보여줬다. 물론 나는 여전히 하나도 이해하진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바로 이 인간들은 진짜 멋있는 인간들이라는 것. 방학동안 쓴 지엘일기에서도 엄청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혜움찬양글이다. 이 인간들은 내가 원래 물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상한 환상을 한 단계 더 확장시켜, 눈에 보이는 tangible phenomenon을 추상적인 물리라는 도구로 만든 가설로 풀어내고 그것을 다시 눈에 보이는 tangible한 실험으로 만들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이건 그냥 말 그대로 혁명이다 혁명. 물론 현상을 관찰 —> 가설을 세움 —> 검증함 이 과정은 아주 정석적인 과학적 방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눈 앞에서 일어나는 걸 보니 이건 그냥 두뇌가 녹아내리고 정신이 11차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이과 여러분들아 if you ever feel down just know that some moongwa is out there treating you like a deity and that should make you feel better. 특히 혜움 여러분들아 이것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칭찬이 될지 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혜움이 정말 존경스럽다. 존경의 수준을 넘어선 극한존경이다. 너무 호들갑 떨었다면 미안하지만, 난 너희들이 후추를 먹든 애벌레를 만들든 플라스틱 튜브를 흔들든 아주 진지하게 말로도 표현을 못 할 정도로 혜움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진심. 

 

하ㅏ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코로나방학을 하자마자 아빠는 너의 겨울방학 특강은 분명히 부족했을 것이라며 또 물리를 하자고 그랬고, 나는 열심히 도망다니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고, 결국 요 몇주 전까지는 저녁마다 한 단원씩 물리 설명을 들었다. (사실 내가 어릴때부터 물리는 유독 이해를 제대로 안 하면 한번 들어도 다른 귀로 쏙 깔끔하게 빠져나간다. 증명을 제대로 하는 걸 적어도 한 번은 봐야 나중에 기억이 난다. 문과 과목이나 화생지는 ‘아 저거 들어본 적 있어!’는 되던데. 쳇.)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었다. 수학이란 걸 좀 배우고 나서 물리를 공부해보니, 사실 수학적으로 증명하는게 모든 개념을 이해하는 데 겁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아빠가 가르칠때는 에너지든 힘이든 거의 다 수학적으로 증명을 했는데 오우쉣 모든 식이 미분을 하고 적분을 하니까 겁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고 진짜 감탄했다. 그러니까 여러분 수학을 열심히 하자. 

 

결론은, 물리는 참 멋있는 학문이란 것이다. 나같은 미천한 인간에게도 물리의 광명이 비춰지는 것이 허락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 shoutout to everyone who helped / will help my mooli life. oh and god save me I have 상담 with 연수쌤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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